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중 영국 대표부 점령 사건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1967년 [[상하이 1월 폭풍 사건]] 이후 중국 전역에는 탈권 현상이 몰아닥쳐 홍위병들이 지역당부와 군 부대까지 습격하여 당과 군의 간부들을 비판하고 조리돌리는 대혼란이 몰아닥쳤다. [[펑더화이]], [[허룽]]을 비롯한 원수들까지 조리돌림을 당하는 처지가 되자 문혁의 광기를 경계하게 된 군 원로들은 마오쩌둥에게 상신하여 군대가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게 해달라는 <8항 명령>에 재가를 받아 전국 각지에서 홍위병들을 대대적으로 진압하였다.[* 이를 [[3월 흑풍]]이라 한다.] 그리고 마오쩌둥이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[[천보다]], [[장칭]]을 비롯한 문혁소조원들이 제멋대로 코뮌을 수립한 일에 대해 크게 질책하자 이를 틈타 [[2월 역류]]라 불리는 정치적인 공격을 문혁소조에 퍼부었으나 마오쩌둥이 문혁소조의 편을 드는 바람에 원로들은 몰락하고 문혁소조가 중국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였다. 여기에 1967년 7월, 우한의 보수파 홍위병 조직인 <백만웅사>가 중앙문혁소조원 [[셰푸즈]]와 [[왕리]]를 억류한 [[7.20 사건]]이 발생하면서 군의 원로들은 배후자로 비난받고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. 군 원로들이 완전히 실각하자 홍위병들은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. 문혁소조는 대중에게 무장하고 싸움에 나갈 것을 촉구했고 홍위병들은 군함, 기관총, 대공포까지 장악하고 군수물자를 싣고 가는 소련 기차까지 습격하는 등 중국의 혼란은 절정에 치달았다. [[장칭]], [[캉성]], [[천보다]], [[린뱌오]], [[야오원위안]], [[장춘차오]] 등으로 구성된 문혁소조는 정부, 당, 군에 극좌적인 공격을 퍼부어 정부를 장악하고 산업을 마비시켰으며 자신들에 반대했던 외교부장 천이와, 간부들을 보호하려는 국무원 총리 [[저우언라이]]를 무력화하기 위해 이들을 마구 공격했다. 특히 천이의 외교부를 장악하기 위해 문혁소조는 린뱌오가 1965년에 한 연설인 <인민전쟁 승리 만세>를 근거로 혁명 국제주의 정책을 선포, 홍위병들을 동원하여 각국 외교공관들을 공격하고 외교관들을 학대하는가 하면 저우언라이의 사무실을 습격하고 외교부 건물을 점령하기까지 했다. 그런데 [[홍콩]]에 문혁의 기운이 퍼지면서 문혁소조와 외교부의 싸움은 국제적인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